지난 22일,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이 제작한 '단재의 혼'이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대전 지역출신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일생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해 연극과 무용이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등장하는 거대한 합창음악극이었다. '단재의 혼'은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이 기획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인물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앞선 합창음악극 '마지막 편지'와 '그 날의 외침 1919'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무엇보다도 '단재의 혼'은 초유의 코로나 상황으로 두 번이나 공연이 미뤄지고 다시 공연장이 폐쇄되기 직전 천우신조로 올라간 작품이다. 그 동안 온라인으로 합을 맞춘 합창단원들과 관계자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이 잠시 코로나가 주춤한 사이 공연으로 결실을 맺게 돼 관객 입장에서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객석 거리두기로 널찍이 띄어 앉았지만, 그 빈 공간을 모두 채우고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실제 열기는 뜨거웠다.

직전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과 같은 순국선열들과 신채호 선생이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민족사관에 기초한 지식인과 선각자로서의 거침없는 행보일 것이다. 56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관통하는 본질은 바로 역사학자로서 글을 통해 계몽운동을 펼치고 독립운동을 고취시켰다는 데 있다. 그에게 글이란 적을 향해 휘두르는 날카로운 칼끝이었으나 같은 동포에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강렬한 혼이었다.

그렇기에 합창음악극 '단재의 혼'에서 무대연출은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례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대 배경과 측면을 거대하게 휘감은 영상은 단재가 쓴 글과 기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활자 영상 그 자체가 신채호 선생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즉각적인 효과를 연출했고, 동시에 본인에게는 칼날이 돼 목숨을 잃는 치명적인 무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치였다. 극 중 청소년합창단의 비중은 앞의 두 음악극과 비교해 더욱 돋보였다. 옴니버스 식으로 연결된 각각의 소재에 따라 합창이 웅장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공연의 중심이 연극적 요소가 아닌 노래하는 합창단임을 명시한 작품이었다. 작곡가 정순도의 창작음악에는 선율미와 서정미가 살아있어 이야기의 전달력이 분명했다.

한편 견고한 기승전결 구성이 아닌 옴니버스 형식이 지닌 극적 한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신채호 선생의 내면적 갈등이나 심리묘사의 비중이 적은 상황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역사적 사건으로 나열된 구조는 섬세한 감정표현을 담당하는 음악에 제한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매번 표방하는 주제가 중요하다보니 처음부터 합창이 클라이맥스로 강렬하게 다가온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합창단이 울부짖거나 주먹 쥐고 흔드는 장면이 때로 지나치다고 느낀 것 역시 교육과 계몽이라는 특별한 목적이 음악적 완성도나 전체 극의 균형보다 우선시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재의 혼'에서 합창은 지휘자와 한 마음으로 노래하며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전체 극에서 음악적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역량 있는 성악가와 노련한 배우들, 혼신의 힘을 다한 무용수 모두 삼위일체로 신채호 선생의 숭고한 삶을 열렬히 증명해 큰 감동을 주었다. 한 독립운동가의 삶의 뿌리가 이곳 대전이라는 점, 그 분이 어떤 실천을 통해 우리 민족을 이끌었는지 음악극이 추구한 의지는 충분히 전달됐다.

그렇다면 단재의 숭고한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함께 화합해 나아가는 인류애의 정신을 청소년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진정한 단재의 혼이 될 것이다.

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교수)